매일 보내던 메일이 있다. 정해진 형식으로 상황을 정리해 관련자들에게 알리는, 특별할 것 없는 업무 메일이다. 요즘은 이 메일의 초안을 내가 만든 에이전트가 쓴다. 자료를 모으고 문장을 만드는 일은 넘어갔고, 남은 일은 초안을 읽고 틀린 곳을 고친 뒤 보내는 것이다. 메일뿐이 아니다. 벤치마킹 자료와 발표 문서도 같은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남은 그 짧은 시간 안에는 결정이 들어 있다. 이대로 보낼지, 한 줄을 더할지, 누구를 참조에 넣을지는 여전히 내 몫이다.

브록먼의 "AGI 시대" 선언과 ARC Prize의 절제된 반박
OpenAI 사장 그렉 브록먼은 GPT-6 "Astra" 공개 자리에서 "지금 우리가 AGI 시대에 있다고 느끼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라며 "이 모델을 첫 AGI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것도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Fortune). 동시에 AGI는 어느 한 순간에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언론은 이 발언을 "AGI 시대 도래"로 요약했지만, 원문은 "느끼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라는 조심스러운 문장이었다.
독립 평가기관인 ARC Prize의 반응은 더 절제돼 있다. ARC Prize는 Astra를 "프런티어 모델 능력의 뚜렷한 계단식 도약"이라 평가하면서도 "벤치마크 포화가 AGI 달성의 증명은 아니다"라고 명시했다. ARC-AGI-3 벤치마크에서 Astra는 표준 하니스 기준 62.7%를 기록했을 뿐이고, 이 수치를 근거로 AGI를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 대조는 이미 다른 글에서 다룬 적이 있는데, GPT-6 아스트라와 AGI 논쟁의 세부는 이전 글(https://denmarkda.tistory.com/49)에 정리해두었다.
기업의 발표와 평가기관의 언어 사이에는 늘 온도차가 있다. AGI라는 이름표가 붙는지보다, 지금 당장 내 앞의 업무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가 더 확인하기 쉬운 사실이다.
먼저 사라지는 업무, 끝까지 남는 업무
지금 조직에서 AI로 대체되고 있는 업무를 나열해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벤치마킹 자료 정리, 문서와 발표자료 작성,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보고 메일처럼 "형식이 정해져 있고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업무가 먼저 넘어간다. 이런 업무는 이미 필자 개인의 업무에서도 에이전트로 옮겨졌다.
반대로 끝까지 남는 업무는 검수, 결정, 책임, 이해관계 조정이다. 에이전트가 메일 초안을 써도 보낼지 말지는 사람이 정하고, 문서를 자동으로 만들어도 그 내용을 고치고 개선할 방향은 사람이 잡는다. 직업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직업을 구성하던 업무 목록에서 몇 줄이 먼저 지워지는 방식이다.
다만 여기서 눈을 돌리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반복 업무가 줄면 그 업무에 들이던 인력도 함께 줄어든다는 점이다. 검수와 결정만 남는다면, 같은 결과를 내는 데 필요한 사람 수는 이전보다 적어진다. 이 점은 굳이 좋게 포장할 이유가 없다.
회사가 택할 수 있는 방향과 그 어려움
지금 확인하고 있는 조직의 방향은 "AI가 대신하면서 생기는 여유 인력을 새로운 일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논리는 단순하다. 반복 업무에서 빠진 시간과 인력을, 지금까지 손대지 못했던 새로운 과제로 돌리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 논리가 실제로 성립하려면 두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첫째, 새로운 일이 기존 인력 규모만큼 충분히 생겨야 한다. 둘째, 그 인력이 새 일에 맞게 재교육될 수 있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의 「Future of Jobs Report 2025」는 2030년까지 신규 일자리 1억7,000만 개가 생기고 기존 일자리 9,200만 개가 사라져 순증 7,800만 개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숫자만 보면 낙관적이지만, 이 전망이 산업 전체의 합계라는 점, 그리고 사라지는 일자리와 생기는 일자리가 같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별개의 문제다.
반대 시각 두 가지
이 방향에 반대하는 시각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 AI가 결정까지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지금은 검수와 결정이 사람의 몫이지만, 에이전트의 판단 정확도가 올라가면 그 경계도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브록먼의 발언이 힘을 얻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둘째, 새 일이 충분히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6년 5월 발표한 「2025~2035 정성적 일자리 전망」에서는 182개 직업 중 "감소" 판정은 하나도 없었지만, "다소 감소" 판정은 12개(6.6%)였고 여기에 출납창구 사무원, 증권·은행 사무원, 안내·접수원, 비서, 전산자료입력원 등 구체적인 업무가 포함됐다. 직업 이름은 그대로 남아도 그 안의 업무는 이미 줄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같은 기관이 2026년 8월 말 발표에서는 최근 고용 둔화의 주원인을 AI 대체 효과보다 청년인구 감소와 경제활동참가율 하락으로 짚었다. 두 시각 모두 근거가 있고, 아직 어느 쪽도 확정되지 않았다.
25년째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입장에서 보면, 조직 개편은 늘 "일이 줄어든 만큼 사람을 줄인다"와 "줄어든 시간을 다른 일에 쓴다" 사이에서 결정된다. 그 결정은 경영진의 몫이지만, 실무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결정이 어느 쪽으로 기울든 자신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결론 — 먼저 들어가 배우겠다는 선택
올해 초 부서를 옮기면서 비슷한 갈림길을 이미 한 번 지나왔다. 그때의 생각은 사업부를 옮기며 변화된 생각(https://denmarkda.tistory.com/30)에 적어두었는데, 핵심은 익숙한 자리에 남기보다 낯선 자리에서 배우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같은 선택을 하고 싶다. 여유 인력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쪽으로 흐른다면, 그 기회에 먼저 들어가 배우고 싶다.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일은 그 시대에 맞춰 만들어지므로,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먼저 부딪혀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AGI라는 이름표가 언제 어떻게 확정되든, 내 앞의 업무는 이미 검수와 결정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하나다. 지금 당신의 업무 목록에서 이미 지워지고 있는 줄은 몇 줄인가.
참고 자료
- ARC Prize 블로그, "Astra" 평가: https://arcprize.org/blog/astra
- Fortune, "OpenAI debuts GPT-6 Astra": https://fortune.com/2026/09/03/openai-debuts-gpt-6-astra-computer-use-greg-brockman-says-start-of-agi/
- 세계경제포럼(WEF), Future of Jobs Report 2025 보도자료: https://www.weforum.org/press/2025/01/future-of-jobs-report-2025-78-million-new-job-opportunities-by-2030-but-urgent-upskilling-needed-to-prepare-workforces/
- 전자신문, 한국고용정보원 「2025~2035 정성적 일자리 전망」: https://www.etnews.com/20260518000032
- 헤럴드경제,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둔화, AI보다 청년인구 감소 영향":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857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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