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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독(Shoe Dog) 후기 –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가 알려준 3가지

덴마크다의 일상로 2026. 8. 30. 16:25

운동화 한 켤레를 신고 달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신발은 도대체 누가, 왜 만들기 시작했을까.

『슈독(Shoe Dog)』은 그 질문에 대한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대답입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인데, 솔직히 말하면 부담 없이 읽었습니다. 성공한 기업가의 훈계나 경영 이론서가 아니라, 계속 실패하고 계속 쫓기던 한 사람의 회고록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은행에서 대출이 막히고, 일본 파트너와 소송이 붙고, 직원 월급을 걱정하는 장면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오히려 페이지가 잘 넘어갑니다.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에 남았던 세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사진: Unsplash 의 wu yi

 

 

1. 결국 '오타쿠 기질'이 필요하다

필 나이트는 오리건 대학교 육상 선수 출신입니다. 스탠퍼드 MBA를 나온 엘리트이기도 하지만, 그를 움직인 건 학위가 아니라 달리기였습니다. 좋은 러닝화를 신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 그리고 미국 시장에 제대로 된 신발이 없다는 답답함이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답답함 하나로 그는 일본 고베까지 날아가 오니츠카(현 아식스)를 찾아갑니다. 명함도 회사도 없는 20대 청년이 '블루 리본 스포츠'라는 이름을 즉석에서 지어내서 수입 계약을 따냅니다. 무모하다기보다는, 그 정도로 신발에 미쳐 있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육상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이 아내의 와플 기계에 고무를 부어 밑창을 만드는 대목입니다. 정상적인 어른의 행동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비정상적인 몰입에서 와플 트레이너가 나왔고, 그게 나이키의 첫 히트작이 되었습니다.

무언가에 깊게 빠져드는 기질, 요즘 말로 '덕질'이라고 부르는 그 성향이 없었다면 나이키는 없었을 겁니다. 남들이 보기엔 쓸데없는 집착이 결국 시장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저는 무언가에 미쳐 있는 사람을 볼 때마다 조금 부럽습니다.

 

2. 젊을 때 넓은 세상을 봐야 하는 이유

책 초반에 필 나이트가 세계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와이, 일본, 홍콩, 인도, 이집트, 그리스, 로마까지. 사업 아이디어를 검증하겠다는 명분이 있긴 했지만 사실상 배낭여행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여행 자체가 아니라 그가 그 여행에서 얻은 것입니다. 일본에서 신발 공장을 봤고, 그리스 아테네의 신전에서 승리의 여신 니케를 만났습니다. 나이키라는 이름과 사업 모델이 모두 그 여행에서 나온 셈입니다.

한 도시에서만 살면 세상의 기준이 그 도시의 크기로 정해집니다. 하지만 여러 나라를 직접 보고 나면 기준 자체가 흔들립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살까,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그럼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래서 어릴 때 세계 곳곳을 경험해 보는 건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펙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자 생각할 재료를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의 목적이라는 건 누가 가르쳐 준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낯선 곳에서 혼자 걸어 다니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3. 특출난 사람들이 모인 게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뜻밖이었던 부분입니다. 필 나이트가 초기에 함께한 사람들이 그렇게 대단한 인재들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첫 정규 직원이었던 제프 존슨은 백과사전이나 펀드를 팔던 사람이었습니다. 밥 우델은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전직 육상 선수였고, 회계를 맡은 사람은 회계사, 법무를 맡은 사람은 변호사였습니다. 육상과 어떤 식으로든 연이 닿아 있긴 했지만, 신발 전문가나 제조업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버트페이스'라고 부르며 회의하던 모습을 보면 정예 조직이라기보다는 어수선한 동아리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나이키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조직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완성된 전문가를 모으는 것보다, 방향에 진심으로 동의하는 사람을 모아 함께 성장하는 편이 더 강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필 나이트는 사람을 뽑을 때 능력보다 태도와 열정을 봤고, 일단 맡기면 세세하게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율성이 각자를 전문가로 만들었습니다.

오래 조직 생활을 해 본 입장에서 이 부분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결국 사람이고, 그 사람을 어떻게 믿고 맡기느냐의 문제입니다.

 

 

 

 

 

마무리하며

『슈독』은 성공담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성공하기 전까지의 아주 긴 불안에 대한 기록입니다. 매출이 매년 두 배씩 늘어나는데도 현금이 없어 부도 직전까지 가는 회사,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앞으로만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취미로 달리기를 하다 보니 나이키 신발을 신을 일이 많은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스우시 로고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참고로 그 로고는 디자인을 전공하던 학생에게 35달러를 주고 받은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것들은 생각보다 초라하게 시작합니다.

 

인생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보고 있는 분,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느끼는 분께 특히 권하고 싶습니다. 필 나이트가 일본으로 떠나던 그때, 그도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